19/07/2020
제 22차 중앙운영위원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학가 서명운동 참여 및 홍보 논의의 안'이 부결된 건에 대한 자보를 게시합니다. 자치도서관 역시 공동성명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이하 전문입니다.
지난 7월 6일 실시된 제22차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대학가 서명운동 참여 및 홍보 논의의 안’이 표결에 올랐다. 이에 7단위는 찬성을, 5단위는 반대를, 총학생회장을 포함한 3단위는 기권을 함으로써 안건이 부결되었다. 이후 회의 결과에 대한 카드 뉴스 게재 외에 총학생회 차원에서 어떠한 언급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홍보 역시 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된 듯하다. 7월 19일 0시 기준, 학우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총학생회 홈페이지에는 제22차 정기회의 속기록이 게시되어 있지 않아 정확히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
학내를 비롯한 사회의 문제 해결에 대한 중운위의 미온적인 대처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0차 정기회의에 상정된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입장문 연명 및 연세대학교 규탄 입장문 작성 논의의 안'도 각각 12단위, 8단위가 기권하여 부결된 바 있고, 19차 정기회의 ‘전국대학학생회 등록금반환 운동본부에 참여한다’ 안건에서도 12단위의 기권으로 부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더욱이 이 모든 논의에서 총학생회장이 기권표를 행사했다는 지점은 다분히 문제적이다.
‘기권’ 행사가 완전무결한 ‘중립’일 수 있다는 믿음은 정치 참여 의식 결여에 기반한 환상에 불과하다. 더불어 이러한 유보적 입장은 깊은 고민 없이도 쉽게 취할 수 있기에, 정치적 대의기구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학생회라면 기권표를 최후의 선택지로만 고려해야 한다. 만일 기권표를 던진 행위가 보이콧의 일환이었다면, 분명한 근거를 명시하여 회의 내용을 빠르게 공유하고, 현존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 모색에 착수해야만 한다. 의미 그대로 ‘권리의 포기(棄權)’를 선언하고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는 총학생회장 및 중운위원 다수의 태도는 문제 상황을 외면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매우 소극적인 행동이자 어느 쪽으로부터도 비판받지 않으려는 회피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연세대학교가 갖는 위치성과 그에 따른 책임은 반드시 숙고되어야 한다. 학벌 위계가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인서울 명문사학’의 학생자치기구가 가지는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온전히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얻어낸 것 이상의 특혜와 권력을, 공동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환원하는 것 또한 연세인으로서의 응당한 책임이다. 이러한 의무에는 눈 감은 채 등록금 반환이나 선택적 P/NP 제도 등과 같은 학내 의제에 외부 여론이 주목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가히 기만적이다. 그러나 총학생회 차원에서만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사업, 특히 다른 단체와 연대하는 사안에는 입장 표명을 유보하기만 한 채 자체적으로 진행한 사업의 성과를 전시하는 데에만 치중해 있는 것이 현재의 총학생회다.
해당 안건에 반대한 이과대학, 공과대학, 생명시스템대학, 음악대학, 약학대학 대표자의 민주정치 이해도는 더욱 심각하다. 정치의 올바른 실현을 위해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가 평등하게 반영될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에 만연한 차별은 이제껏 정치의 장을 ‘정상성’에 부합하는 이들의 이권만을 과대표 하는 곳으로 왜곡시켜왔다.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왜곡을 완화하기 위한 마중물과 같다.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결여된 이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란 그저 ‘다수주의’에 불과한가? 이들의 반대 표결은 대표자로서 단위 내의 차별을 용인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이로써 반대의 목소리를 낸 다섯 단위에 속한 소수자들은 학내에서 당한 차별과 배제를 대표자에게 안전하게 호소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었다.
현재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대표로 하여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장애, 인종, 성별, 병력 등 23가지 요소를 이유로 고용, 재화 및 용역, 교육, 행정 서비스에서 개인에게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하거나 직·간접적인 차별을 가했을 때 국가위원회가 차별행위자에게 차별의 중지 및 시정을 권고하거나 명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별 가해자에 대한 형사상의 처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개인을 규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안이 아니다. 또한 혐오는 한 개인이 타인을 싫어하는 차원을 넘어 전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폭력의 기제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혐오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안전망이자, 개인이 어떤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마땅한 삶과 존엄으로부터 배제된 이들을 사회 안으로 포용하고자 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조차 동참할 수 없다면 한국 사회의 미래, 그리고 우리가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가치들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더 나아가 차별금지법이 다루고 있는 영역은 결코 학내 사안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연세대학교는 다양한 배경과 상황, 정체성을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다. 차별이 어디에나 존재하듯, 연세대학교 또한 모두에게 자유롭고 평등한 공간이 아니다. 장애인 접근성, 강의실 내 혐오 발언, 교수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혹은 단톡방 성희롱 등의 다양한 문제는 애써 용기를 낸 개인에 의해 수없이 공론화된다. 장애 여부, 나이나 사회적 신분에 따른 위계, 출신 국가나 피부색,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병력 또는 건강 상태와 무관하게 학내의 모두가 동등한 수준의 교육권을 보장받고 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학교 당국과 학생회는 매번 피상적 대응이나 사건의 종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한편 차별금지법을 위한 연서명이 중운위에서 부결되었다는 사실은 중운위가 학내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권 의식 및 정치 참여 의지조차 부족함을 방증한다.
인권과 평등은 정치적 논의의 대상이 아닌 전제가 되어야 한다. 학생들을 대표하는 학생회 측에서는 학내 구성원 모두가 만연한 차별에서 벗어나 인간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마땅하다. 더군다나 이들이 기권과 반대를 표함으로써 부결시킨 ‘연명’은 사실상 가장 적극적인 참여라고도 보기 어려우며, 이미 존재하는 소수자들에 대한 인정과 환대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행동이다. 우리는 이러한 소극적 행동을 위한 안건에서조차 회색지대를 고수하는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Mate 및 중운위원들의 무책임을 규탄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총학생회는 평등한 학내 사회에 대한 의무를 명심하라!
하나, 해당 안건에 기권 혹은 반대한 단위는 그 이유를 소상히 밝혀라!
하나, 연명을 부결한 중앙운영위원회는 학내 차별 철폐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하라!
2020. 7. 19.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자치언론 문우편집위원회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자치도서관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지 연희관 015B
연세대학교 이과대학 페미니즘 동아리 페스포트
연세대학교 이공계열 페미니즘 살롱 세이프하우스
연세 여성주의자 재학생 네트워크
연세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 비상대책위원회
연세대학교 중앙 문예창작동아리 연세문학회
연세대학교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
연세편집위원회